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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운드트랙의 매력에 빠지다


독서실에서 하루종일 공부하는데 요즘엔 영화 사운드트랙을 듣습니다. 그냥 노래가 나오는 것 말고, 스코어(Score)라 불리는 사운드트랙이요. 아카데미에서 '노래'가 아니라 '음악상'이라고 불리는 부문에 오르는 후보들 말입니다. 영화를 봤다면 영화의 장면을 떠오르게 하고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와 멋진 사운드가 있어서 그 자체로도 즐길 만한 음반인 것 같아요. 아직은 2000년대 이후에 만든 아카데미 후보들을 위주로 찾아서 듣고 있지만 곧 영화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들도 들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일단은 이것부터 계속 돌려듣고 있습니다.

Tron: Legacy (soundtrack)



사실 일렉트로니카는 완전 문외한이거든요. 그 유명한 다프트펑크나 데이빗 게타도 이름만 들어봤고 유명한 노래만 몇 번 들어봤을 뿐 거의 모르는 거나 다름없어서요. 영화가 2010년에 개봉했지만 며칠 전에야 정식으로 이 앨범을 접했습니다. 헐리우드 스타일에 다펑 끼얹기지만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일렉트로니카, 다펑, 영화음악 모두에게 괜찮은 입문 앨범 같습니다.

사실 사운드트랙을 들었던 건 며칠 전 봤던 오블리비언(Oblivion)의 사운드트랙을 슈게이징 밴드인 M83의 앤서니 곤잘레스(Anthony Gonzales)가 한 거라는 기사를 보고 '한 번 들어볼까...'로 시작한 건데요. 같은 감독인 조셉 코신스키(Joseph Kosinski)의 '트론: 새로운 시작'의 음악을 다펑이 했다는 걸 기억하고 들었던 거예요.

Oblivion (Soundtrack)



암튼 이걸 시작으로 예전에 듣다 말았던 '헝거 게임',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인셉션', '소셜 네트워크'까지 일단 구해서 듣고 있습니다. 한스 짐머나 제임스 뉴튼 하워드도 좋지만 트렌트 레즈너가 만든 소셜 네트워크의 사운드트랙도 참 좋네요. 데이빗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도 트렌트 레즈너가 한 거라고 하니까 들어봐야죠. 요새 좋은 작품 많이 낸 알렉산드르 데스플랑도 곧 들어봐야 할 텐데요...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

Touchdown...


오블리비언 보고 왔다.

한줄평?
비주얼에 현혹되지 않고 때려부수는 액션 SF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꼭 봐야 할 영화. 탐 크루즈 팬은 필히 봐야 함.

SF 영화를 극장에서 본 건 정말 오랜만이다. 어벤저스를 굳이 SF로 포함해도 그건 작년에 봤으니 거의 1년이 다 되었다.

비주얼은 압권이다. 오랜만에 보는 광활한 스케일의 우주, 폐허가 된 지구, 공중에 떠 있는 기술자들의 거주지 등 장소는 미래 기술의 집약체처럼 보인다. 드론이나 비행선, 바이크, 무기 등의 디자인도 상당히 미래적이고 세련되다. 검은 귀신처럼 보이는 저항군(?)의 모습과 대비되는, 밝지만 매우 차갑고 생명이 없는 느낌을 제대로 전달한다. 그래서 주인공 잭의 비밀의 장소를 채우는 푸른 초원과 호수, 모자와 책 등 지금 시대의 물건들이 따뜻하면서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비주얼들을 보며 '와...'라며 감탄하기보다는 가슴을 저리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꿈을 꾸고, 사랑을 그리워하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려 하고,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잭의 모습이 필사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는 물론이고 트레일러도 보지 않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스토리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래서 시각적 요소에 압도되어 이야기는 깊게 생각하지 못한 채 극장을 나섰다. 사실 영화를 줄거리를 즐긴다거나 철학적으로 생각한다거나 하는 건 잘 못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생각만 든다. 다른 분의 감상을 보니까 다른 영화의 설정을 이것저것 가져온 게 많다고 하는데 - 토탈 리콜, 매트릭스 등 - 사실 SF의 세계관은 이미 고전에서 완결이 다 나지 않았나 싶다. 오블리비언은 그 전통들을 하나로 합쳐서 나름 설득력 있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나중에 이 모든 것들이 결국 2017년 3월 5일, 잭과 비카의 기억 속에 머물던 것들이 2077년 식으로 나왔다는 것에서 조금 놀라긴 했다.

조금 아쉬웠던 건 주인공이 클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49호와 52호의 만남) 잭 하퍼 49호가 정체성의 고민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클론이지만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미련과 인간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가진 존재인데 자신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었다. 그런데 그걸 넣으면 이야기가 30분은 더 가야 할 것 같고 영화는 3시간으로 가거나 2편을 만들어야 할 듯해서 과감히 잘라낸 것 같았다. 물론 영화의 다른 부분을 조금 압축했더라면 이 이야기를 다룰 수 있을 테지만 그러면 영화 전체를 공명하는 특유의 분위기는 나지 않았을 것 같다.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탐 크루즈는 역시나 믿음이 가는 배우다. 본인이 작품성보다는 흥행을 택하긴 했지만 액션을 하면서 연기를 이만큼 잘 하는 배우도 드물긴 하지. 그런 탐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장르는 의외로 SF 라고 생각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오블리비언처럼 미래 배경의 SF에서 탐의 눈빛만큼은 정말 심장에 콕콕 박힌다. 이 영화에서도 꿈과, 생명, 사랑을 그리워하는 잭 하퍼의 감정은 탐의 눈빛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되고 이해된다. 사방을 그린스크린으로 채운 스튜디오에서 본인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을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환경에서 이만큼 스토리를 잘 전달하는 배우는 흔하지 않다. 액션하는 탐보다 SF하는 탐이 더 좋다. 그러니 SF 많이 찍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