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리비언 (Oblivion, 2013)

Touchdown...


오블리비언 보고 왔다.

한줄평?
비주얼에 현혹되지 않고 때려부수는 액션 SF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꼭 봐야 할 영화. 탐 크루즈 팬은 필히 봐야 함.

SF 영화를 극장에서 본 건 정말 오랜만이다. 어벤저스를 굳이 SF로 포함해도 그건 작년에 봤으니 거의 1년이 다 되었다.

비주얼은 압권이다. 오랜만에 보는 광활한 스케일의 우주, 폐허가 된 지구, 공중에 떠 있는 기술자들의 거주지 등 장소는 미래 기술의 집약체처럼 보인다. 드론이나 비행선, 바이크, 무기 등의 디자인도 상당히 미래적이고 세련되다. 검은 귀신처럼 보이는 저항군(?)의 모습과 대비되는, 밝지만 매우 차갑고 생명이 없는 느낌을 제대로 전달한다. 그래서 주인공 잭의 비밀의 장소를 채우는 푸른 초원과 호수, 모자와 책 등 지금 시대의 물건들이 따뜻하면서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비주얼들을 보며 '와...'라며 감탄하기보다는 가슴을 저리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꿈을 꾸고, 사랑을 그리워하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려 하고,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잭의 모습이 필사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는 물론이고 트레일러도 보지 않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스토리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래서 시각적 요소에 압도되어 이야기는 깊게 생각하지 못한 채 극장을 나섰다. 사실 영화를 줄거리를 즐긴다거나 철학적으로 생각한다거나 하는 건 잘 못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생각만 든다. 다른 분의 감상을 보니까 다른 영화의 설정을 이것저것 가져온 게 많다고 하는데 - 토탈 리콜, 매트릭스 등 - 사실 SF의 세계관은 이미 고전에서 완결이 다 나지 않았나 싶다. 오블리비언은 그 전통들을 하나로 합쳐서 나름 설득력 있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나중에 이 모든 것들이 결국 2017년 3월 5일, 잭과 비카의 기억 속에 머물던 것들이 2077년 식으로 나왔다는 것에서 조금 놀라긴 했다.

조금 아쉬웠던 건 주인공이 클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49호와 52호의 만남) 잭 하퍼 49호가 정체성의 고민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클론이지만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미련과 인간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가진 존재인데 자신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었다. 그런데 그걸 넣으면 이야기가 30분은 더 가야 할 것 같고 영화는 3시간으로 가거나 2편을 만들어야 할 듯해서 과감히 잘라낸 것 같았다. 물론 영화의 다른 부분을 조금 압축했더라면 이 이야기를 다룰 수 있을 테지만 그러면 영화 전체를 공명하는 특유의 분위기는 나지 않았을 것 같다.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탐 크루즈는 역시나 믿음이 가는 배우다. 본인이 작품성보다는 흥행을 택하긴 했지만 액션을 하면서 연기를 이만큼 잘 하는 배우도 드물긴 하지. 그런 탐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장르는 의외로 SF 라고 생각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오블리비언처럼 미래 배경의 SF에서 탐의 눈빛만큼은 정말 심장에 콕콕 박힌다. 이 영화에서도 꿈과, 생명, 사랑을 그리워하는 잭 하퍼의 감정은 탐의 눈빛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되고 이해된다. 사방을 그린스크린으로 채운 스튜디오에서 본인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을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환경에서 이만큼 스토리를 잘 전달하는 배우는 흔하지 않다. 액션하는 탐보다 SF하는 탐이 더 좋다. 그러니 SF 많이 찍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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